호남문화총서7      

전쟁과 사람들 -아래로부터의 한국전쟁 연구


인도 구술사 연구의 동향과 전망 구술사

2005/11/02 12:46

http://blog.naver.com/stupa84/100019038583

                

                     인도 구술사 연구의 동향과 그 전망:

인도 서브얼턴 연구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1950 년대 본격 시작된 인류학자들의 인도 촌락연구는 공시적인(synchronic) 현지조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레드필드(Redfield)의 영향을 받은 매리어트(Marriott, 1955) 등의 일련의 인류학자들은 촌락연구에 시간의 변수를 고려하여, 촌락의 소문화(little culture)에 대한 연구는 이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인도의 대문명(great civilization)에 대한 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제하였다.1)

   그러나 인도사회의 인류학적 연구와 역사학적 연구의 만남을 체계적으로 주장한 학자는 콘(Cohn, 1987)으로 평가된다. 그는 1962년에 발표된 ‘역사학자들 가운데 인류학자’라는 논문을 통해 인류학자들로 하여금 역사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려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후 인도를 연구한 많은 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 인도 촌락의 카스트, 전통경제 양식 등이 오랜 식민지적 경험과 이를 극복하려는 민족주의자들의 의도적 산물임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류학적 연구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인도사회를 연구하는데 있어 카스트를 시간적 변수를 초월한 핵심적인 구조적 원리로 보려는 뒤몽(Dumont, 1970)이 등장하였으며, 그의 주장은 시간과 무관한 인도 사회의 진수를 발견하려 했던 지난날의 오리엔탈리스트들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뒤몽류의 연구풍토를 본격적으로 반격하고 나선 덕스(Dirks, 1993)를 중심으로 한 소위 민족사학(ethnohistory)2)은 전통적인 현지조사 방법과 광범위한 역사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 자체를 권력이 생산해 놓은 권력관계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또한 역사를 그러한 권력관계로부터 문화적이고 맥락적으로 구성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1980 년대 이후 인도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와 역사학적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일련의 연구조류는 소위 서브얼턴 연구(subaltern studies)이다. 그간 인도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식민주의), 민족주의, 맑스주의 같은 소위 거대 담론은 한 사회의 주변부의 이야기보다는 중심부의 이야기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거대담론의 성격상 사회의 주변부의 역사, 예컨대 서브얼턴의 역사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1982 년부터 시작된 서브얼턴 연속 단행본은 2000년 현재까지 10권을 발행하였으며 이 밖에도 간간이 모음집의 형태로 추가적 발간이 있어 왔다. 1권부터 6권까지 편집을 맡은 구하로 대표되는 연구자들이 다룬 주제는 초기에 남아시아에 있어서 농민과 노동자의 저항이었지만 후기의 연속물은 부족의 역사, 농민사회구조, 코뮤날리즘, 루머 등으로 주제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브얼턴 연구가 인도 국내외적으로 이 분야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인식론적이거나 방법론적 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본 글의 관심은 서브얼턴의 연구가 서브얼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구술사(oral history)를 제안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여기에서는 우선 서브얼턴 연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 역사학, 맑스주의 역사학의 비판을 통해 살펴보고 그 의의를 살펴본다. 다음으로 서브얼턴 연구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지적된 인식론적 문제점과 방법론적 문제점이 제기되고 서브얼턴을 대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구술사 방법론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브얼턴 범주 가운데 특히 여성과 농민을 대상으로 한 몇 개의 기존 연구들의 내용과 연구방법을 중심으로 인도의 구술사 연구의 동향이 고찰될 것이다.  



Ⅱ. 서브얼턴 연구 내용과 비판적 고찰


  서브얼턴 연구의 출발점은 서브얼턴3)으 로 표현되는 피지배계층을 역사연구와 사회연구의  중심에 두고자 함이다. 따라서 이들 연구의 관심이 역사로부터 가려져 온 서브얼턴의 관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데 있기 때문에, 소위 ‘밑으로부터의 역사’의 생산이 연구의  목적이라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그람쉬(Gramsci)의 ‘서브얼턴너티’의 개념과 푸코의 ‘권력과 지식’의 담론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이들 초기 연구들이 농민과 노동자의 저항과 전복행위를 주로 다룬 반면 후기 연구들은 권력과 지배적 형태의 헤게모니 역할에 대한 연구 경향성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그간의 인도 역사 쓰기에서 지배적이었던 거대담론들 예컨대 오리엔탈리즘(식민주의적 역사), 민족주의자들의 역사 쓰기, 맑스주의자들의 역사 쓰기에 대한 담론들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자신들의 서브얼턴 역사 쓰기를 제안하고 있다.

   서브얼턴 학자들이 비판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식민주의 인도 역사 쓰기에 대한 비판이다. 사이드(1991)에 따르면 오리엔탈은 서구의 상상적 지리이며 서구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오리엔탈 텍스트와 제도적 관행들은 물질적이고 합리적인 유럽의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미신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로써 식민당국인 영국은  영적이고 감각적인 인도를 ‘창출’하여 인도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한편 서브얼턴 역사 쓰기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들도 비판한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 의한 인도 역사 쓰기는 인도사회에 대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의 본질화를 인정하되, 인도사회를 수동적인 대상에서 능동적이고 역사와 이성을 지닌 주체적인 대상으로 전환시키려는 것이었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산스크리트 인도 문명의 장구하고 불변적인 존재를 강조하였다.  특히 민족주의가 대중적인 현상으로 등장하던 1920-30년대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영국의 역사적 해석에 대항할 수 있는 자원을 인도의 고대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즉 오리엔탈리스트들이 유럽의 기원을 인도의 텍스트에서 찾았다면,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근대국가의 기원을 인도 고대에서 찾고 있었다. 따라서 일부 민족주의 역사가들은 고대 인도 황제를 연구하여 고대 제국의 성립으로부터 국민국가(nation-state)의 발흥을 찾으려 하였다. 이들은 인도의 황금시기를 힌두교가 융성한 고대에서 찾는 반면, 인도의 식민지화는 중세의 무슬림의 침략으로 쇠약한 인도가 서구의 침략 대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Prakash, 1990).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인도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undivided and unitary) 자아라는 것이며, 인도가 자율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본질로부터 유래한다고 전제하였다. 이들의 견해에서 본 역사의 임무는 식민지적 통치로부터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지난날의 오리엔탈적 지식의 편견성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는  길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적절한 묘사라고 주장한다4).

   그러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인도의 주체성과 단일한 의지를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존재로서의 인도에서 찾음으로써 인도의 계급과 종족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존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의 주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인도의 고대 역사가 이성의 산물이라 여겨지는 국민국가, 공화주의, 경제발전, 민족주의를 가져 온 보편주의적인 정신에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성이라는 이름 하에 식민주의를 비판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역사는 이성에 기반한 계몽주의의 도구였으며, 서구 교육을 받은 이들 엘리트들은 계몽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였다(Prakash, 1990).

   이러한 민족주의적 엘리트주의 역사 쓰기에 대한 비판은 구하(1982)의 연속 발간물 제 1권의 “식민지 인도의 역사 쓰기에 관한 몇 가지 양상”이란 글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서의 엘리트는 영국 엘리트와 인도 부르조아 엘리트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들은 인도 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특혜를 입은 계층이다. 엘리트들에 의한 역사 쓰기 내에서 서브얼턴의 민족주의적 행위는 부정적으로는 무법과 무질서를 야기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영도에 순응하는 것으로 평가되곤 하였다. 이러한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 역사 쓰기는 서브얼턴의 자율적인 영역과 수평적인 동원과정에 대한 분석을 배제하여 왔다.

   서브얼턴 연구들은 맑스주의 역사 쓰기 역시 비판하고 있다. 맑스주의 연구는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자아’로서의 인도를 주장하는 오리엔탈리즘과 민족주의 연구들에 대해, 이들이 인도 내부에 있는 계급적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들에게 있어서 계급적 관계의 성격은 식민주의 지배자도 또한 이를 계승한 민족주의자들도 극복할 수 없었던 불평등성의 진전이었다(Prakash, 1990).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은 무 계급적 역사는 피압제 계급에 대한 역사를 부정하고 갈등보다는 화합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데 믿음 하에 지배, 반란, 운동조직 등에 관한 항쟁적 역사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맑스주의자들의 담론은 단선적인 발전과정을 전제하면서 최종적 과정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극치를 이룰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맑스주의 사학자들에게 있어서 역사 쓰기는 계급과 구조의 작용을 잡아내는 것을 의미하며, 프라카쉬(Prakash, 1990)는 이러한 역사 쓰기의 형식을 근본적(foundational) 역사 쓰기라 비판하고 있다. 근본적 역사 쓰기는 역사가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이질적 요소로 분해될 수 없는 최종적인 개인, 계급, 구조와 같은 일부 독자적 요소들을 통해 재현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도 역사에 대한 민족주의적(엘리트주의적) 역사 쓰기와 맑스주의적 역사 쓰기에 대한 도전은 구하(Guha)를 비롯한 서브얼턴 학자들에 의해 그간 역사의 관심밖에 있었던 소위 서브얼턴 중심의 역사 쓰기를 통해 주창되었다. 줄곧 서브얼턴 연구의 주요 관심 대상인 농민과 농민반란의 역사를 복원시키고자, 이들 연구들은 식민주의 관료정치의 다양한 산물들인 센서스, 법정기록문, 각종 공문서 등이 구성되어진 과정과 방식에 대한 탐구를 하였다. 이들 연구자들에게 서브얼턴에 대한 역사 쓰기는 기존의 기록 자료에 대한 반란적 독해(insurgent readings)이기 때문에 일종의 항쟁적인 행위인 셈이다. 이들은 연구 방법의 하나로써 영국 식민주의가 도입한 제도들과 이들에 상응한 각종 법, 정책, 태도 등에 관한 자료들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방법을 통해 연구자들은 식민지 당국에 대항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행위를 주창하였던 인도의 하위 카스트와 계급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제공하였다. 서브얼턴을 중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들 학자들의 비판적 역사 쓰기는 서브얼턴이 자율적 영역과 저항의 정치학 뿐 아니라 운동조직 및 저항 이데올로기를 지녔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제1권에 게재된 아놀드(Arnold, 1982)의 “반란적인 구릉지인 : 구뎀-람파 반란 1839-1924” (Rebellious Hillmen : The Gudem-Rampa Uprising 1830-1924)의 연구는 농민들을 압제에 직면하여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존재로 서술하지 않고 있으며, 전통경제와 사회의 붕괴에 대한 저항은 아래로부터 오게됨을 보여준다. 1879-1880년의 람파 반란에서의 농민들의 저항은 외부자에 대항하여 결속을 촉진하는 종교적인 표현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록 법적으로는 범죄자이지만 농민들에게는 영웅이나 독립운동가로 인식되는 ‘사회적 산적’(social banditry)들이 당시 구릉지역에 널리 유행하여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외부 압제자에 대한 일종의 저항과 도전행위로 아놀드는 해석하고 있다.

   그간 엘리트주의 역사에서 배제된 서브얼턴에 대한 연구는 인도 뿐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등 국외의 역사학 뿐 아니라 인류학 등 인접학문 분야의 서브얼턴 연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비평문들이 서브얼턴 연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인식론적이고 방법론적 문제점들을 지적하여 왔다.

   서브얼턴 연구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이 가운데 중요한 문제점들이 다스(Das, 1989), 스피박(Spivak, 1985), 오한론(O'Hanlon, 1988), 루우드(Ruud, 1999)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다스는 서브얼턴이란 용어가 구별되어지고 잘 규정된 사회적 집단을 지칭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용어는 특정 문화적 담론이나 일련의 사회적 관계에 관련지어 지배적인 담론을 심문하거나 전복시키기 위한 반동적인 기제가 고용 가능할 때에만 이용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서브얼턴의 개념 사용 자체가 기존 담론의 전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스피박은 서브얼턴 학자들이 서브얼턴 의식의 단일성과 일관성 및 순수성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이들이 서브얼턴을 역사적 주체로 만들어 내기 위해 실제로는 이질적인 결정들(heterogeneous determination)과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서브얼턴의 담론들을 자결성(self-determination)과 일관성을 강조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즉 스피박은 서브얼턴의 과도한 주체성 강조를 비판하고 있다.

   오한론 역시 유사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녀의 지적에 의하면, 서브얼턴 주체성 뿐만 아니라 헤게모니적 담론에 대한 서브얼턴의 저항의식을 복원시키려는 서브얼턴 연구자들의 시도는, 자아 발원적(self-originating)이고 자결적인 개인이라는 부적절하게 설정된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개인은 흔히 이성적 본질로 표현되는 주체적인 의식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자유에 대한 지배력을 소유한 행위자로 상정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녀는 또한 서브얼턴의 독립적 의지와 자결력을 보여주려는 연구자들의 열광은 헤게모니적 담론과 서브얼턴 문화간의 상호관련성과 연속성을 무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서브얼턴의 주체성과 연속성 및 의식의 논리성에 대한 과도한 주장은 서브얼턴의 저항의 한계를 부적절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특히 이는 서브얼턴이 가끔은 지배적 담론 내부로부터 목소리를 내고 또 다른 때는 지배적 담론 밖에서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루우드 또한 이들 연구자들이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라는 이분법에 집착함으로써 지배적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서브얼턴만의 행위와 사고의 ‘자율적인’ 영역5)이 있음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음을 비판하였다6). 그는 자신이 수행한 벵갈의 두 농촌 사례를 통해 서브얼턴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전적으로 통제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는 없으며, 이들은 지배적 이데올로기 내부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 간다고 주장한다.

   서브얼턴 연구자들 가운데 차크라바티(Chakrabarty, 1989)는 자신의 ‘노동계급의 역사에 관한 재고찰’(Rethinking Working-class History)이란 연구에서 서브얼턴 공장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속해 있는 농촌사회를 지배하는 위계적 문화를 전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며, 이러한 문화는 그들의 노동장소인 공장의 작업장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위계적 문화는 사회적 분화를 뛰어 넘어 계급을 기반으로하는 결속감 형성에 저해 요인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위계적 문화라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내부에서, 이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묘히 이용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작업장 간부 등에게 리더로서 또는 보호자로서의 일종의 시혜나 관대함을 보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Ⅲ. 서브얼턴 연구의 방법론적 한계


   앞서 지적된 인식론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구하를 비롯한 서브얼턴 학자들이 이 분야 연구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점은 정치적 변화를 다룬 역사적 문헌 내에서 농민들을 비롯한 서브얼턴의 정치학을 자리 매김 할 수 있는 본격적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수행을 위해 채택된 서브얼턴 연구 방법은 역사 기술을 위해 엘리트들이 생산해 놓은 자료를 사용하되, 이들 자료 속에서 역사적으로 박해받고 배제된 서브얼턴에 관한 증거를 철저히 밝혀내고자 하는 ‘창의적 독해’(creative reading)이다7).

  서브얼턴 연구를 위한 가능한 다른 방법은 서브얼턴 스스로가 생산해 놓은 자료를 발견하는 것이며, 이는 서브얼턴 연구자 이전에도 이미 다른 학자들에 의해 일부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8) 즉 농민조직인 키산사바(Kisan Sabha) 등의 운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료를 입수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농민들의 주체성과 행위성이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그 수와 양에 있어 매우 한정적이다. 서브얼턴에 속하는 대상들의  대부분은 흔히 기존의 역사적 서술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기록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서브얼턴식의 연구를 수행하는 일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사항은 서브얼턴 각자가 역사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브얼턴의 용어사용 자체가 개별적 서브얼턴이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서브얼턴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텍스트를 원천으로 하는 독해 작업을 뛰어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채택되어야 할 보완적 연구방법은 서브얼턴의 일치된 목소리의 부활이 아니라, 불연속성, 헤게모니적 성격과 전복적 성격의 상호 관통, 일상 생활의 순간 순간에 유효한 목적달성을 위한 이것들의 다양한 안배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Raheja, 1994).

   이러한 방법론의 한 가지로 구술사적 연구방법이 적합할 것이라는 주장은 구술사 방법론의 성격을 고려할 때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베이리(Bayly, 1988)는 서브얼턴 연구자들이 식민지적 문서에 대한 재구성적(reconstitutional) 분석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서 매우 유용할 수 있는 구술사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9) 또한 라헤자(Raheja, 1994)는 대개가 문맹인 평범한 여성들의 목소리의 기록에 거의 관심이 없는 인도의 역사적 기록물들을 통해 서브얼턴인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시키기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한다. 서브얼턴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했다면 여성들만의 노래, 넋두리, 농담, 시 등의 구술적 전통에 숨어 있는 전복적 성격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사실 서브얼턴의 범주에 속할 수 있는 여성과 달리트(Dalit) 투쟁에 대한 연구는 서브얼턴 연구가 본격 개시되기 이전에 이미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10). 그러나 이들 가운데 구술사적 방법을 통해 연구한 것은 거의 전무하다. 이들 외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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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성장해 2000년대를 살고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지만, 스스로를 역사학도라고 생각한다. 면식과 만화, 수다와 어린이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