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는 우화로, 신화는 신화로, 불가사의는 시적
판타지로 가르쳐져야만 한다.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유약한 사람들은 그런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나서
엄청난 고통을 겪지만,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그들이 그런 가르침에 만족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진리를 위해
그러하듯, 미신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미신은 막연하고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항해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진리는
시야와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에 바뀔 수 있다. -히파티아. 알렉산드리아 400년경.
최초의 여성 수학자이자 천재로 기록된 히파티아는 기독교도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채 머리카락이 다
뽑히는 고문을 겪은 뒤 살해당했고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거리에 전시됐다. 그녀를 살해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키릴로스는 성인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이건 그로부터 훨씬 이후에 일어난 일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것이었다. 천 수백 년이 흐른 이후 당대의 세계
최강대국은 십자군 전쟁을 운운해가며 두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부자를 위한 예수를 논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를
위한 예수를 논하는 자들이 견해를 좁히기 어려운 이유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두고 서로의 목적에 알맞은 예수를 해석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논쟁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 와중에 성전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굳이 그 수많은 종파와 이름들을
일일히 구분짓고 거론하지 않겠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진짜 예수 가짜 예수 오해된 예수 왜곡된 예수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이명박의 예수와 굴다리 거지의 예수는 다르지 않다. 그저 규명 없이 해석만이 가능한 텍스트일 뿐이다. 책 속의 이름이다.
더군다나 유일신 신앙이라는 정체성이 따라붙는 이상 그 배타성만으로도 기독교는 진보주의자의 선택이 될 수 없다. 진보주의자의
기독교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특정 유일신 종교가 불특정 절대다수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세상 안에서 그 둘을 분리해 사고한다는 건, 혹은 그렇게 주장한다는 건 위선이다. 그 믿음이 진보적인 가치관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저들의 예수와 나의 예수를 다르게 논하는 것 또한 위선이고 모략이고 코미디다.
예수 신화는 그 탄생부터
갖가지 이적과 부활, 어쩌면 지엽적일 수 있는 날짜들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태양신 신화를 비롯한 고대 이교도의 상징을 모조리
취합하고 모사해 지배권력층의 구미에 맞게 조정된 공상이다. 우리 현실에서 예수는 실체 없는 선도부장이고 뚜쟁이다. 모든 기독교
커뮤니티는 종교집단이 아니라 사교 클럽으로 정정되어야 마땅하다.
마가복음을 인용해가며 이런 기사를 썼던 때도
있었다. 거대 교회에 거스르는 지금 나의 글이 사실 교회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는 식의 뉘앙스를 포섭하는 게 최소한의 안정감과
소속감을 약속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의 서로 다른 얼굴들을 선택적으로 신봉하며 진보와 보수를 논하는 모든 종류의
시도가 무모하고 쓸데없어 보인다. 아니, 이성이 작동하는 체계 자체를 정작 이성이 마비될 수 밖에 없는 종교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악랄해 보인다. 오컬트 호러영화를 볼 때만큼을 제외하면 기독교를 비롯한 유일신 신앙이 내게 줄
수 있는 감흥이란 전무하다. 기독교로부터 나온 '선택과 계획'이라는 세계관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그 대단한
계획에 의해 선택되었다는 사람들이 나라들이, 이 종교에서 그토록 부르짖는 '사랑'과 '평화'에 어떤 결과를 초래해왔는지에 대해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신은 없다. 있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사람의 문제는 사람의 몫이지 신성에서
찾을 수 없다. 허지웅






사람은 어떤 종교든 가질 수 있고, 종교를 가진 사람의 성향이 진보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독교와 진보는 같이 갈 수 없는 개념일까요-
하긴 저도 소위 민중신학을 하는 교회 다닐 때는 예배라기보단 특강을 듣는 기분이었어요.